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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5대 궁궐 관람(입장료, 무료해설, 입장시간, 휴무일) 서울 종로 안국역 가볼만한 곳

by 다비니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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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에서 식사와 후식을 하고 향한 곳은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창덕궁은 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으로,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관람 및 입장 관련 안내

※ 관람 권역: 창덕궁은 전각관람과 후원(왕실정원) 특별관람으로 나누어져 있다.

- 전각관람은 자유롭지만 창덕궁 후원(왕실정원)은 해설사를 동행해야지만 관람이 가능하며, 관람일 6일 전부터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을 받는다.

 

※ 매표소: 창덕궁 입구(돈화문) 왼편에는 카드전용 무인발권기가 있어서 이곳에서 매표를 하면 된다. 오전 9시부터 발권이 가능하다.

 

※ 입장료: 창덕궁 전각관람 입장료는 성인 1인 3,000원이다.

- 만 65세 이상, 만 24세 이하인 경우 신분증을 제시하고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휴무일과 입장시간은 아래와 같다.

* 휴무일

매주 월요일 휴무

휴무일이 공휴일과 겹칠 경우 다음날 휴무

* 입장시간:

2월~5월, 9월~10월

화~일 09:00 - 18:0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6월~8월

화~일 09:00 - 18:3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11월~1월

화~일 09:00 - 17:3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창덕궁 돈화문(입구)

입장은 창덕궁 돈화문을 통해 가능하다.

입구 옆에는 관람권 QR코드를 찍고 들어가는 곳이 있다.

 

창덕궁 무료해설 시간

창덕궁 무료해설 시간과 집결 장소는 권역과 언어별로 상이하다.

 

창덕궁 소개 및 지도

출처: 네이버

창덕궁에 대한 안내판을 읽었다.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 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하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인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 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에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 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1997년 12월 조선 왕궁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여 한국 궁궐 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비원으로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다양한 정자, 연못, 수목, 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진선문

진선문은 창덕궁의 중문(中門)으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에 있는 금천교를 지나면 나온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진선문을 들어서면 직사각형의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으며 마당에는 어로(御路)가 나 있다. 마당 둘레에는 인정전으로 통하는 인정문과 호위청·상서원 등의 행각이 있다. 백성의 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 혹은 등문고라 불리는 북을 태종 때 진선문에 설치했고, 중간에 유명무실해졌다가 영조 때 다시 설치했다고 한다."

 

창덕궁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문안도 하고 정사를 아뢰며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등 중요한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앞쪽에는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와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품계석을 둔 조정 마당을 두어 국가의 상징 공간으로 삼고, 뒤편에는 인정전 뒷산인 매봉과 맥이 이어지도록 계단식 정원을 마련하였다. 조정 마당을 둘러싼 내행각에는 호위대 주둔소와 창고 등을 두었으나 현재는 비어 있다. 인정문 앞 외행각의 사다리꼴 마당은 불규칙한 지형과 규칙적인 궁궐 형식을 절묘하게 융합한 공간으로, 세종 때의 건축가 박자청이 설계한 것이다. 외행각과 진선문, 숙장문은 1996년에 다시 세운것이다."

이 건물은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국왕의 즉위식 또는 공식적인 대례를 거행하던 곳이다.

인정전 내부의 용상이다.

용상 뒤에는 만원 지폐권에 있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도 보인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개 봉우리, 소나무, 파도치는 물결을 화폭에 담은 궁중장식화다. 참고로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에도 일월오봉도가 있었다.

인정전 천장에는 왕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봉황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창덕궁 선정전

숙장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선정문이 나온다.

선정문을 지나면 선정전이 나온다.

"선정전은 궁궐의 편전(사무공간)으로서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이다. 지형에 맞추어 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 같이 열렸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은 비서실, 창고 등으로 이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선정전에 청기와를 올린 것과 앞쪽 선정문까지 복도각 건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선정전은 한 때 혼전(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쓰였는데, 복도는 그 때의 흔적이다."

청기와가 특징인 선정전

선정전 앞 복도각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궁궐 속 쉼터, 파라솔 아래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심쿵쉼궁'을 운영하고 있었다.

파라솔 아래 돗자리에 앉아 바라본 하늘. 잠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창덕궁 보경당 터 일원

심쿵쉼궁 옆에는 보경당 터 일원이 있었다.

"이곳은 보경당과 함께 태화당과 재덕당이 연이어 있었던 곳이다. 보경당은 조선 전기에는 선정전과 더불어 임금이 평상시에 머물던 편전으로 이용되었으며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따. 17세기 이후에는 후궁이 머물기도 하였다.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1670~1718)의 처소이자 그녀가 영조를 낳은 곳이다.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1770~1822)가 보경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화당과 재덕당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보경당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경당을 비롯한 태화당, 재덕당은 1908년 이후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1911년에는 내전에 음식을 공급하던 선무실이 들어섰다."

 

창덕궁 대조전 일원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이며 왕실의 큰 행사도 자주 열렸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안대청을 사이에 두고 왕과 왕비의 온돌방이 설치되었다. 원래의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를 결정했던 비운의 장소이며, 행각과 복도로 여러 부속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다.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진 터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마지막 왕비였던 순정효황후의 거처로 해방 후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유한 장식과 벽화, 문살 등이 잘 남아 있다. 뒤편에 4단의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후원으로 삼았고, 누마루를 뒤편으로 돌출시켜 이를 감상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건축적으로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건축 형식을 무량각(無樑閣)이라고 하는데 궁궐 건축에서만 보인다. 임금이 머무는 대조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은 임금이 곧 용이기 때문에 두 용이 부딪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내전의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 세 건물은 지붕이 있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 복각(復閣)이라고 하는데 이 복각이 생활공간으로서의 편리성을 보장한다.

대조전에 있는 장대석을 4단으로 쌓아올린 화계 위로 붉은 벽돌과 검은 기와가 어우러진 꽃담장이 높직이 올라앉아 있다.

이름모를 예쁜 꽃들

창 뒷편으로 보이는 궁궐의 모습이 마치 액자 안에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남겼다.

 

창덕궁 성정각 희우루(喜雨樓)​

성정각(誠正閣)은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으로 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다. 성정각은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꺾인 2층의 누(樓)가 붙어 있어 독특한 모습이다. 누각에는 희우루(喜雨樓), 보춘정(報春亭) 이라는 편액들이 걸려 있다. 성정각 뒤편에 있는 관물헌(觀物軒)은 왕이 자주 머물면서 독서와 접견을 했던 곳으로, 현재는 ‘집희(緝熙)'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창덕궁 승화루, 삼삼와

승화루(承華樓)는 1782년(정조 6) 정조가 장남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탄생을 계기로 중희당을 건립할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로 세자가 놀고 공부하던 곳으로, 작은 왕립도서관으로 이용되었다. 일명 소주합루라고도 한다. 아래 사진 속 오른쪽 누각이다.

삼삼와(三三窩)는 흔히 육우정(六隅亭)이라 불리는 육각형의 정자 형태의 건물이다. 과거에는 중회당과 승화루를 이어주고 있었으며 기단과 장대석을 쌓고 지어져 비교적 높은 건물이 되었다. 이곳의 기능은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칠분서와 마찬가지로 이름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아래 사진 속 가운데 건물이다.

 

창덕궁 후원(왕실정원), 창경궁 입구

여유롭게 심쿵쉼궁에서 쉬기도 하고 창덕궁 전각을 둘러보니 약 2시간 정도 소요됐고 창덕궁 후원(왕실정원)과 창경궁으로 통하는 입구가 나왔다.

방문 당시 후원은 사전예약을 하지 않아 입장이 불가했기 때문에 이어서 창경궁을 연계 관람하기로 했다.

근 7년 만에 방문하는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창덕궁을 다시 관람하게 되어서 좋았다.

 

참고: 창경궁 연계 관람 후기

[일상] 창경궁, 서울 5대 궁궐 관람(입장료, 무료해설, 입장시간, 휴무일) 서울 안국역 가볼만한 곳

https://krcaus.tistory.com/207 

 

[일상] 창경궁, 서울 5대 궁궐 관람(입장료, 무료해설, 입장시간, 휴무일) 서울 안국역 가볼만한

창덕궁 전각관람에 이어 창경궁도 같이 관람하기로 했다. ​ 창경궁 매표소는 두 곳인데 우리는 창덕궁을 통해 들어가는 함양문 매표소로 입장했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매표소로 입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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