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전각관람에 이어 창경궁도 연계 관람하기로 했다.
창경궁 매표소는 두 곳인데 우리는 창덕궁을 통해 들어가는 함양문 매표소로 입장했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매표소로 입장하는 경우는 우리가 관람한 순서와는 거의 반대로 관람하게 된다.
창경궁 관람 및 입장 관련 안내
※ 입구 및 매표소: 창덕궁을 통해 들어가는 함양문 매표소와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매표소가 있다.
※ 입장료: 창경궁 전각관람 입장료는 성인 1인 1,000원이다.
- 유료관람객 10인이상 단체는 800원이다.
※ 무료대상:
-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경로, 장애인, 국가유공자, 한복착용자 등
- 할인 대상자 별도 확인
※ 할인대상:
- 종로구민(50%, 관련 증빙 제시)
휴무일과 입장시간은 아래와 같다. 정문으로 입장하는 시간과 창덕궁 연계관람 매표시간이 다른 점 유의하길 바란다.
* 휴무일
매주 월요일 휴무
(휴궁일이 공휴일(대체공휴일 포함)과 겹칠 경우 개방하며, 이 경우 개방한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을 휴궁일로 함.)
* 매표 및 입장시간:
화~일 09:00 - 20:00
* 관람시간:
화~일 09:00 - 21:00
* 창덕궁 연계관람(함양문) 매표시간:
2월~5월, 9월~10월
화~일 09:00 - 17:00
6월~8월
화~일 09:00 - 17:30
11월~1월
화~일 09:00 - 16:30
우리는 창덕궁을 관람하고 함양문 매표소가 닫기 약 5분 전에 입장했다.
창경궁 무료해설 안내
창경궁 무료해설 시간과 출발 장소는 요일과 언어별로 상이하다.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창경궁 소개 및 지도
창경궁에 대한 안내문을 읽었다.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하였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했다.
경복궁처럼 일정한 원칙을 좇아 경영된 궁궐과 달리, 창경궁은 건축 형식과 제도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세워지고 이용된 궁궐이었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지만,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 왕실 동산인 함춘원과 낙산이 자리를 잡고 있어 그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활공간들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창경궁은 자연 지형을 따르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운과 친근함을 두루 갖춘 궁궐이 되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 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들에 속한다.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땅의 맥을 끊고 그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여 궁궐의 품격을 훼손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아직 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채취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아래 창경궁 지도에서 보이는 현재 위치에서 대략 이런 순서로 관람했다.
6(통명전과 양화당) -> 7(영춘헌과 집복헌) -> 5(경춘전과 환경전) -> 4(숭문당과 함인정) -> 풍기대 -> 성종태실 및 태실비 -> 8(내전 터 일원) -> 9(춘당지 일원) -> 팔각칠층석탑 -> 대온실 -> 10(관덕정과 집춘문) -> 2(명정전 일원) -> 1(홍화문과 외행각)
영춘헌과 집복헌(왼쪽), 통명전과 양화당(오른쪽)
창덕궁에서 들어와 오른쪽 돌계단으로 내려가면 돌계단 기준 왼쪽으로는 영춘헌과 집복헌 뒷모습이, 오른쪽으로는 통명전과 양화당 뒷모습이 보인다.
돌계단을 내려가 영춘헌과 집복헌에 대한 안내문을 읽었다.
"이 일대는 후궁들의 처소가 밀집된 장소였다. 영춘헌과 집복헌도 후궁의 거처였다. 현재 집복헌은 마치 영춘헌의 서쪽 행각처럼 붙어 있으나 원래는 두 집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834년에 다시 세우면서 지금처럼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사도세자와 순조가 집복헌에서 탄생했다. 정조는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겼으며 이곳에서 승하했다. 이 건물의 동쪽에 궁녀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작은 건물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빈터이다."
경춘전과 환경전
"경춘전은 대비의 침전이고 환경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다. 두 건물 모두 1834년에 다시 세웠고, 원래는 각기 행각을 두른 독립된 영역을 가졌었다. 경춘전은 왕비의 산실청으로도 쓰여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정조는 본인의 탄생을 기념해 내부에 '誕生殿'이라고 친히 쓴 현판을 걸었다. 경춘전 현판은 순조 임금의 글씨이다. 환경전은 중종과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곳이며, 건물 뒤편 북쪽은 여러 대비들의 침전이 밀집해 있었으나 지금은 빈터로 남았다."
숭문당과 함인정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앞쪽에 설치된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함인정은 문과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 '세상이 임금의 어짊과 인자함에 흠뻑 젖는다'는 건물 이름의 뜻을 상징하듯,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이다."
함인정 앞모습과 뒷모습
왼편에 숭문당이 보인다.
아래는 문정전과 숭문당을 잇는 회랑이다.
"문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누던 창경궁의 편전으로 동향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 건물이다. 편전이면서도 왕실의 신주를 모신 혼전으로도 자주 쓰였다. 아버지 영조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비극도 문정전이 혼전으로 쓰이던 것과 관련이 있다."
풍기대와 앙부일구
대온실 쪽으로 향하기 위해 처음에 내려왔던 돌계단을 다시 올라가서 풍기대 쪽으로 빠지기로 했다.
"창경궁 풍기대(보물)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8세기 유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입체 해시계인 앙부일귀는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보물 제 845호의 모사품이다."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청동의 오목판 안바닥에는 일곱 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시각선이라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이 시각선에 비쳐지면서 시간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시각선 이외에 열세 개의 가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낸다. 제일 바깥 줄은 동지의 해 그림자가 따라가는 줄이며, 제일 안쪽 줄은 하지선이다."
해시계(앙부일구) 보는 법에 대한 안내도 있다.
성종태실 및 태실비
"태실은 왕족의 태반을 묻어 기념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이다. 태실은 전국의 풍수가 좋은 명당에 흩어져 있었고, 성종의 태실은 경기도 광주에 있었다. 1928년 즈음에 조선 왕실의 태실 대부분을 서삼릉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형태가 온전한 성종태실만 이곳으로 옮겨 연구용으로 삼았다고 한다."
내전 터 일원
성종태실 및 태실비에서 내려오면 내전 터 일원이 나오는데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에 보이는 숲 일대는 궁궐 여성들의 처소로 가득했던 생활구역이었다. 그 가운데 요화당과 취요헌은 효종이 공주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으며, 통화전은 혼전으로 이용되었다. 그 사이 사이에 궁녀들의 작은 처소들이 많았고, 어린 왕자들과 관련된 건물들도 섞여 있었으나, 1830년에 일어난 화재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일대의 모든 내전들이 사라졌다."
춘당지 일원
내전 터 일원에서 왼쪽으로 가면 춘당지가 나온다.
"춘당지는 창덕궁 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의 소춘당지가 원래의 춘당지이고, 대춘당지는 1909년에 내농포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든 것이다. 내농포는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이다. 춘당지에는 원앙이 살고 있으나 오늘은 보지 못했다."
현재 연못의 넓이는 소춘당지가 약 335평이고, 대춘당지가 약 1961평, 연못가운데 섬이 약 101평이라고 한다.
대춘당지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대춘당지의 섬은 1984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춘당지 근처에서 발견한 토실토실한 길냥이!
사람을 보고도 전혀 겁을 먹지 않는다. 눈 앞에서 낮잠을 자려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길냥이를 지나치니 이번에는 오리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포착했다.
사람이 있는데도 가까이 다가오는 오리들
엄마 오리 옆에 꼭 붙어서 헤엄치는 새끼 오리들이 왜이리 귀여운지
오리 구경을 마치고 춘당지를 다시 걷다가 새하얀 나무를 봤다.
백송이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소나무 종류 중 하나로 하얀 껍질이 특징인데, 어릴 때는 초록색이 들어간 푸른빛이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고 한다.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어서 조금 걸음을 서두르기로 했다.
팔각칠층석탑
대춘당지를 걷다보면 팔각칠층석탑이 나온다.
"보물로 지정된 이 탑의 기단부는 4각형 받침돌과 8면에 안상을 새긴 2단 고임돌과 8면에 안상과 꽃을 새긴 연화대좌로 구성하였다. 7층의 탑신부는 기와지붕건물 모양이며 1층은 연화좌 위에 높고 볼록한 몸돌을 얹었다. 꼭대기에는 흰 돌로 만든 보주 장식을 올렸다. 1층 몸돌에 새겨진 '성화 6년'이란 글씨를 근거로 1470년(조선성종1)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대온실
춘당지 뒷편에 있는 넓은 마당에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지은 대온실이 있다.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하여 식물원으로 공개한 건물이다. 목조로 된 가느다란 뼈대로 뾰족아치와 창틀을 만들고 유리를 끼웠다. 전체적인 모습은 당시 서양에서 유행했던 수정궁류의 근대 건축을 연상시키지만, 지붕 용마루에 조선 왕실의 문양인 오얏꽃을 반복하여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대온실 앞에는 르네상스풍의 분수와 미로식 정원도 함께 조성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관리가 안 되고 있는듯이 보이는 분수
대온실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돌아 쭉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먼저 벌레를 잡아서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식충식물들이 있다.
그 다음은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전통수목양묘사업소'에서 천연기념물 지정식물의 유전자원 보전을 위해 천연기념물 모수에서 직접 채취해서 키워내는 나무도 볼 수 있다.
이 복도를 따라 쭉 걸으면 양쪽에 많은 식물들과 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알록달록한 서양철쭉 진달래꽃도 있다.
대온실 중앙의 모습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우리가 들어온 대온실 입구다.
아래는 눈향나무다.
단풍나무하면 큰 나무만 생각나는데 이렇게 작은 중국단풍도 있다.
관덕정과 집춘문
대온실에서 나와 걷다보면 관덕정과 집춘문이 나온다.
"관덕정은 1642년에 지었으며 활을 쏘던 정자였다.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훈련과 무과시험장으로 쓰였다고 전한다. 정자 뒤로는 단풍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들이 단풍으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한다. 집춘문은 관덕정 북쪽 담장에 난 궁문으로 문묘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역대 임금들이 문묘로 나갈 때는 이 문을 이용했다."
명정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창경궁의 명전인 명정전이다.
명정전은 "1616년에 재건된 명정전(국보 226호)은 창경궁의 중심 전각으로 각 궁궐에 남아 있는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단층의 단아한 규모지만 2단으로 쌓은 월대 위에 세워 정전의 위용을 갖추었다. 앞쪽에 펼쳐진 조정에는 박석을 깔고 중앙에 행차용 삼도를 두어 왕궁의 격식을 갖추었다. 뒤쪽은 다른 건물로 연결되는 복도를 달아 통행의 편리함을 추구했다. 명정문과 행각(보물 385호)이 조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행각들은 왕실 친위부대의 주둔지나 왕실의 초상을 치르기 위한 재실로도 쓰였다."
노을이 비추는 명정전의 모습은 사진으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에 비하면 비교적 규모가 작다.
창덕궁에서 봤던 일월오봉도가 창경궁에도 있다.
천장에는 왕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봉황 한 쌍이 있다.
아름다운 노을과 명정전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여러 각도로 찰칵찰칵 찍었다.
명정문과 옥천교
아래 명정문을 넘으면 명정전이 나온다.
아래 사진 속 보이는 다리는 금천을 가로지르는 옥천교다. 홍화문 매표소로 입장한 관람객들은 옥천교를 지나 앞서 소개한 명정문으로 향하게 된다.
해가 빠르게 지고 있었다.
나무 뒤로 숨어버린 해와 어둠이 지기 시작하는 창경궁의 모습
홍화문과 외행각
마지막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다.
"창경궁의 중심 부분이 동향이기 때문에 정문인 홍화문(보물 384호)도 동쪽으로 세워졌다. 1616년에 다시 세워진 이 문 앞에서 국왕이 일반 백성들을 친히 만나기도 하고 앞에 있는 왕실 언덕인 함춘원에 활터를 세워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대문 안쪽에 명당수인 금천을 흐르게 하고, 그 위에 옥천교(보물 386호)를 건너는 상징적인 마당을 만들었다. 이 마당을 둘러 싼 외행각은 궁궐을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했다."
이렇게 창경궁 관람도 끝! 창덕궁과 연결되어 계획에 없던 창경궁도 관람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 분명 가봤을텐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던 창경궁이어서 그런지 다른 궁궐들보다 더욱 새롭게 느껴지던 궁궐이었다.
참고: 창덕궁 관람 후기
[일상]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5대 궁궐 관람(입장료, 무료해설, 입장시간, 휴무일) 서울 안국역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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