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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쿡🇰🇷/여행

[경주여행] 분황사(주차, 관람시간, 입장료), 경주 구경거리, 경주 볼거리, 경주 가볼만한 곳(양귀비, 청보리밭)

by 다비니 202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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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1일 여행 코스: 석굴암 -> 불국사 -> 무열왕릉 -> 황룡사지 -> 첨성대​ -> 월정교 -> 동궁과 월지(안압지)]

[경주·포항 2일 여행 코스: 문무대왕릉 ->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 호미곶해맞이광장 -> 영일대 해수욕장 -> 스페이스워크]

[경주 3일 여행 코스: 분황사 -> 포석정]

경주·포항 여행 마지막 날! 오전 일찍 방문한 곳은 국보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분황사에는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주차를 하고 구경할 수 있었다. 평일 오전에 방문했는데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주차비는 무료다.

 

분황사 입구 및 매표소

분황사는 국립경주박물관 앞 사거리에서 안압지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500m정도 가면 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날이 조금 흐렸다.

* 입장시간:

매일 09:00 - 18:00 (하절기)

매일 09:00 - 17:00 (동절기)

* 입장료(개인):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 입장료(단체 20인 이상):

청소년 및 군인: 1,300원

어린이: 900원

* 무료입장:

만70세 이상 경로우대 어른

장애인 복지카드 지참자

국가유공자(보호자 동반1명)

조계종 신도증 지참하신 분

경주시민(신분증 지참)

매표는 매표소 옆에 있는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된다.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입구에서 직원분께 표를 보여주고 입장하면 된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에는 공양의 의미에 대한 안내가 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분황사 모전석탑!

앞에 있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안내판을 읽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므로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흑회색의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이다. 지금은 3층이지만 원래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에 일본인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하였다.

바닥돌은 자연석으로 널찍하게 쌓았고 네 모서리에 사자상을 두었다. 1층은 면마다 화강암으로 문을 만들고, 문 양쪽에 금강역사상을 2구씩 배치했다. 2층과 3층은 높이가 현격하게 줄었고, 지붕은 아래위쪽 모두 계단식으로 쌓았다. 탑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연꽃 장식이 있다.

1915년에 수리할 때 2층과 3층 사이에서 돌사리함이 발견되었다. 함에는 녹유리 조각, 구슬, 가위, 금·은바늘과 은함, 숭녕통보, 상평오수전 등이 담겨 있었다. 이 동전으로 보아 고려 숙종에서 예종 때인 12세기 초에도 탑을 수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돌사리함에는 타이완, 오키나와 등지에 서식하는 조개의 껍질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신라의 대외 교역에 대한 단서가 된다.

* 모전석탑: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 돌을 벽돌 모양으로 가공하여 쌓거나 모서리기둥을 생략하고 지붕돌의 윗면을 계단식으로 만든 탑"

안내판을 읽고 모전석탑을 천천히 한 바퀴를 둘러보면서 다양한 각도로 한 장씩 남기기로 했다.

그러다가 신기한 걸 발견했는데 네 모서리에 있는 사자상의 모습들이 조금씩 달랐다는 거다.

아래는 조금 더 뭉퉁한 느낌이고

이건 조금 더 선명하고 진한 느낌

입구 반대편에서 찍은 분황사 모전석탑 모습이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다음은 유형문화재 제97호인 분황사 화쟁국사비부에 대한 설명이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는 원효대사(617~686)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받침돌이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원효대사가 동방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웠다. 그 후 추사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이 비석 받침을 발견하고 이를 고증한 글귀를 새겨 두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평장사 한문준이 비문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변에서 찾은 비석 조각이 일부 전해지고 있다.

비석 받침의 윗면에 비석을 꽂아 세웠던 직사각형 홈이 파여 있고, 윗면의 모서리는 떨어져 나갔다. 옆면에는 옅은 안상**을 새겼다.

* 시호: 죽은 이의 덕을 기리어 붙여주는 호

** 안상: 네모난 면의 모서리를 장식했던 기둥 문양. 코끼리 눈을 형상화한 문양이라고도 함."

 

분황사 석정

주변에는 분황사 석정도 있다.

"이 석정은 분황사에 남아 있는 신라 시대의 우물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물고기로 변한 우물'이라고 해서 호국용변어정으로도 불린다.

<삼국유사>에 이 우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 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용이 살았다. 원성왕 11년에 당나라 사신이 주술을 써서 이 용들을 물고기로 둔갑시켜 잡아갔다. 이 용들의 부인이라는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남편을 찾아줄 것을 청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자 물리 한 길이나 솟아오르고 용들이 기뻐하며 뛰었다. 당나라 사람들은 왕의 밝은 지혜에 감복했다고 한다.

이 우물은 틀의 높이가 약 70cm로 외부는 팔각 모양이고, 내부는 원형이다. 남아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돌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우수하며 지금도 사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나 이 우물에는 조선 시대에 분황사에 있던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이곳에 넣었다는 아픈 이야기가 전한다."

 

분황사 구석구석

모전석탑 옆에는 타종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1인 1,000원이고 보시수입은 전액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도 천 원을 내고 타종을 했다. 종이 웅장하게 오래 울리는 게 참 신기했다. 어떻게 저런 종을 만들었을까.

분황사 주변에는 사적 제549호인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이 있다.

 

분황사 주변 양귀비꽃, 청보리밭

방문 당시 5월 중순이었는데 청보리밭과 양비귀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주차장을 기준으로 해서 왼쪽은 양귀비가 있고 오른쪽에는 청보리밭이 있다.

여기저기 양귀비가 아주 예쁘게 피어 있었다.

사이사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폭이 작아서 꽃을 밟을 수 있어 조심하면서 걸어야 했다.

방문 당시 사람이 많지 않아 전세 낸 것처럼 사진을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굳이 보정을 하지 않아도 너무 예쁜 양귀비

특이한 분홍색 양귀비도 보았다.

양귀비 밭 반대편으로는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쪽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사진을 맘 편히 찍을 수 있었다.

보리밭 중간에는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도 볼 수 있다. 당간지주에 대한 안내판을 읽었다.

"사찰에서 의례나 행사가 열릴 때 깃발을 높이 달아 알렸는데, 그 깃발을 당, 깃대를 당간, 긴 당간이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주는 지지대를 당간지주라고 하며 대개 사찰의 입구에 세워졌다.

이 당간지주는 남쪽의 황룡사지와 북쪽의 분황사지 사이에 있다. 분황사에서 남쪽으로 50m 지점이기 때문에 이 당간지주의 소속사찰을 분황사로 추정하고 있다.

양 기둥에는 상·중·하 3곳에 지름 15cm의 구멍이 있고, 기둥 사이에 당간을 받쳤던 거북 모양의 독특한 당간받침돌이 남아 있다. 경주 지역의 다른 당간지주들과 비교할 때, 통일신라에서도 이른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전석탑뿐만 아니라 청보리밭과 양귀비꽃도 구경할 수 있어서 1석2조였던 5월의 분황사! 적극 추천한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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