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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독서

[독서] Edward Said(에드워드 사이드)의 Orientalism(오리엔탈리즘) 영어원서 후기

by 다비니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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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6번째 책, Edward Said의 Orientalism (1978)

(독서 기간: 2022년 7월 10일~7월 14일)

학부 때 들었던 과목 중에서 Required Reading List에 있었던 책으로, 당시에는 몇 챕터만 선정해서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졸업 후 책을 사놓았는데 한국에 오게 되면서 한동안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얼마 전 읽은 Charles Holcombe의 A History of East Asia: From the Origins of Civilization to the 21st Century의 서두에서 'What is East Asia?'라는 질문에 이 책이 떠올라서 이북으로 읽기로 했다.

이 책의 출발점은 '동양(Orient)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요약하자면 동양에 대한 지식은 현실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서양의 사고와 인식에 비친 것이다. 서양은 동양을 분석하며 '그들'과는 다른 '우리들'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 동양에 대한 인식 관계와 담론에는 힘이 작용하며 이러한 서구의 사고방식과 지배방식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인 것이다.

"The relationship between Occident and Orient is a relationship of power, of domination, of varying degrees of a complex hegemony, and is quite accurately indicated in the title of K. M. Panikkar's classic Asia and Western Dominance. The Orient was Orientalized not only because it was discovered to be "Oriental" in all those ways considered commonplace by an average nineteenth-century European, but also because it could be—that is, submitted to being—made Oriental." - pg. 5-6

 

"... Orientalism can be discussed and analyzed as the corporate institution for dealing with the Orient—dealing with it by making statements about it, authorizing views of it, describing it, by teaching it, settling it, ruling over it: in short, Orientalism as a Western style for dominating, restructuring, and having authority over the Orient.” - p. 30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하여 표면상 적합하다는 여러 가지의 요청, 관점,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규칙화된(곧 동양화된) 작품, 비전, 연구의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은 어떠한 독특한 방법에 의해 가르쳐지고, 연구되고, 관리되고, 판단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 속에 나타나는 동양은 서양의 학문, 서양인의 의식, 나아가 근대에 와서 서양의 제국지배영역 속에 동양을 집어넣는 일련의 총체적인 힘의 조합에 의해 틀이 잡힌 표상의 체계이다." - 국문 번역본 

 

책 소개

출처: yes24 (필자 일부 수정)

1978년 미국에서 초판 출간되었으며, 사이드는 이 책을 통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을 오리엔탈리즘으로 규명하고 있으며 오리엔탈리즘으로 총칭되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인식, 표현의 본질을 깊이있게 파헤치고 있다. 특히 20세기의 영국 및 프랑스에 의한 식민지 지배로부터 현대 미국의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정책에 이르는 오리엔탈리즘의 기능을 중심 축으로 유태-아랍문제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오리엔탈리즘 탄생 배경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78년 출판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인문학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 제목을 들어봤거나 혹은 읽어보려고 시도하게 되는 대표적 학술서적이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듣거나 보게 되며, 그것은 '오리엔탈(oriental)' 적이라거나 '동양풍의 취향'이라는 표현과 의미로 사용된다. 과연 우리가 흔히 접하고 사용하는 동양풍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적절히 사용하고 있을까?

‘오리엔트(orient)’는 동양, 동방을 뜻하는 단어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동양연구에 종사하는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럼 우리는 이런 유의 단어들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흔히 우리는 옷이나 가구의 스타일을 묘사할 때 ‘오리엔탈 풍의 가구’, ‘오리엔트 무늬’ 혹은 ‘터키풍 액세서리’와 같은 표현을 쓴다. 사실 이러한 표현이 내포하는 그 스타일이나 취향이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도 대강 그것이 무슨 느낌인지에 대한 공감대를 이미 갖고 있다.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누구나 그런 것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은 바로 이러한 성격을 지닌, 어느샌가 형성된 집단적 상상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동양’이라는 말에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문화가 존재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서문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살고 있었으며 명문대에 자리 잡은 교수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7년 발발한 제 3차 중동전쟁은 미국인으로 살던 사이드의 정체성에 혼란과 불안을 가져왔다.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드는 상황에서 사이드는 더 이상 순수한 미국인이 아니었고 미국인들은 그를 ‘팔레스타인 인’으로 바라보았다. 에드워드(영국식) 사이드(아랍식)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가진 그는 중동전쟁을 계기로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의 새로운 제국인 미국의 중심부에서 당연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즉,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을 가장 강력하게 재현하고 있는 미국에서 정치적 존재를 완전히 부인당한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위협 받는 정체성의 혼란이 [오리엔탈리즘]을 탄생시킨 것이다.‘이 때 중동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오리엔탈리즘]이 쓰일 수 있었을까?’ 라는 반문은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영국식 ‘에드워드’와 아랍식 ‘사이드’, 두 문화의 충돌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이때는 아직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의 강제적 점령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사이드의 아버지는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부유한 사업가로 미국 군인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는 미국 시민권 자였다. 게다가 그의 부모님은 모두 기독교도였다. 사이드는 어린 시절 이집트 카이로에서 성장했고 아랍어권의 환경과 영어와 아랍어를 섞어 쓰는 부모님들의 언어생활 덕분에 두 언어를 모두 익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이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복잡한 족보나 왜 (나사렛 출신의) 어머니가 영어만 사용하는 평범한 엄마가 아닌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순수한 기독교도이거나 순전한 이슬람교도이거나 순전한 이집트인이면 얼마나 좋을까란 절망적인 소망을 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어린 시절을 강하게 압도한 감정은 자신이 제자리가 아닌 엉뚱한 장소에 잘못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의 복잡한 국가적, 종교적 배경은 사이드라는 한 소년을 아랍 사회에서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게 만들며 그 때부터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찾기라는 평생의 과업을 던져주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이드의 다층적인 정체성은 그의 이름에도 나타난다. 사이드는 아랍계 이름인 ‘사이드’에 영어식 이름인 ‘에드워드’가 짝지어진 자신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불쾌감을 덜 느끼는데 무려 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사이드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났던 1935년 당시 시대의 총아였던 영국 왕세자(훗날 에드워드 6세)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고, ‘사이드’는 그의 삼촌이나 사촌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사이드에게 자신의 이름은 논리적 근거도 족보도 없는 이상한 이름으로, 자신 뿐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들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이름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이 ‘에드워드’인지 ‘사이드’인지에 대해서 평생을 고민하게 된다.

1948년, 사이드의 고향이자 그의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그의 가족은 난민이 되어 모두 이집트의 카이로로 이사 갔다. 그 곳에서 사이드는 빅토리아 칼리지라는 영국 정부가 영국인과 혈연관계에 있는 아랍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공립학교를 다니게 된다. 여기서 사이드는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이 한 명도 없는 아랍계 학교에서 영어를 써야만 하고 영국식 교육을 강요받는 억압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출신에 이집트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영어식 이름과 미국여권을 가지고 있었던 소년 사이드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그 정체가 매우 애매모호한 인물이었다. 그다지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고 문제아로 낙인찍힌 사이드는 결국 1951년 빅토리아 칼리지에서 퇴학당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이드를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엄격한 청교도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 곳에서도 사이드는 역시나 이방인이었다. 미국 출신이 아닌 아랍계에 후천적으로 습득한 영어는 어색했고, 야구와 농구, 축구를 모르고 자란 유일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사이드는 난생 처음으로 앵글로색슨이 아닌 다른 언어와 민족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적대적인 감정을 참아내야 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사이드는 교내 1, 2위를 다투었지만 그는 앵글로색슨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석이나 차석 졸업생 명단에서 제외되는 차별을 겪었다. 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그들’이 가진 일종의 도덕적 가치 판단의 결과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드는 점점 자신이 서구화 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서양의 문학과 음악, 철학에 심취했고 이러한 성향은 대학원 과정까지 이어져 아랍적인 배경과 멀어지며 1963년 가을,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비교문학과의 교수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1967년 중동전쟁의 발발로 돌아간다. ‘에드워드’였던 그는 잠재되어 있던 ‘사이드’와 격하게 마주치게 된다.

 

동양은 과연 여성적이고 수동적인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사이드의 저작은 [오리엔탈리즘]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그의 근본적 의문의 출발점도 중요한 문제의식도 모두 이 책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책이 출간된 지 34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이드의 다른 어떤 저작보다도 [오리엔탈리즘]이 가장 많이 분석되고 비판되고 인용되고 있다. 사이드는 이 책을 통해 19세기 유럽 제국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 즉 동양을 측량하고, 분류하며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고 지배의 상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식과 권력 사이의 연결고리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과 담론의 형성과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인식론적 틀을 통해 서양을 ‘남성적, 이성적, 강인함, 능동적’인 것으로 동양을 ‘여성적, 감정적, 나약함, 수동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 서구 미술의 주요 흐름 중 하나였던 오리엔탈리즘 작품들에는 나체의 여성이 무기력하게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는 하렘의 모습이나 여러 여자들이 벗고 있는 공중목욕탕, 동방의 노예, 동방에 대한 전쟁의 승리와 같은 왜곡된 동양의 모습들이 그려졌다.

[오리엔탈리즘]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오리엔탈리즘의 범위>로 사이드는 이 담론의 광범위하고 무정형적인 범위를 보여준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의 시작점을 18세기 후반으로 잡고 동양이라는 타자의 범위를 아랍세계로 한정한 점은 연구의 한계와 비판의 근거를 제공한다. 2부는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으로 사이드는 19세기의 중요한 문헌학자, 역사가, 작가들이 텍스트 안에서 동양을 어떻게 묘사하고 분석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작업들이 어떻게 동양을 재구성하고 시각화 했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식민지 경영에 활용되었는지를 분석한다. 3부는 <오늘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채택되고 변용되었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것이 현재에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논의는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선 가장 근본적이고 두드러진 문제점은 오리엔탈리즘을 생산하고 재현하는 과정이 피지배자에 대한 서구의 일방적인 지배구도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즉, 오리엔탈리즘을 설명하기 위해 사이드는 자신이 비판하고자 했던 지배자-피지배자, 유럽-아랍, 서양-동양 이라는 이분법적인 식민담론의 구조를 오히려 강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양측을 단일한 집단 혹은 개체로 일괄처리하면서 실제로는 다양한 층위와 성격을 갖는 주체들을 말살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사이드는 피지배자들의 편에서 저항의 단초가 되어야 할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을 오히려 동양의 종속성, 수동성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만들어 실질적 저항의 근거를 없앴다는 날선 비난을 받고 있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분석에 가해진 비판들은 상당부분 예리하고 타당한 면이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이드가 극복하고자 했던 극히 제한된 지적 활동의 약점들인 학문의 고립성과 배타성 그리고 현실감의 결여라는 문제들을 재확인 시켜줄 뿐이었다. 많은 비평가들이 다양한 태도로 사이드의 이론들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있지만 대개 동의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비판도 [오리엔탈리즘]의 기초를 흔들만한 절대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전환점을 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78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그야말로 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이제는 명실 공히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사이드가 제기한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라는 “orientalism”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함축성은 기존 학문 분야의 명칭으로 사용된 ‘oriental studies’나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를 가리키는 ‘orientalist’라는 단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서구의 오리엔탈리스트들, 즉 동방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인 동양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oriental’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미국의 학과들은 과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우리는 흔히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삼대 이론가를 꼽을 때, 사이드와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을 든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역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사이드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역사는 사이드 이전과 이후로 분리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실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역사가 사이드로부터 시작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비평가들이 이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쌓아왔다. 하지만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라는 것이 비교문학 분야를 넘어 이토록 광범위하게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파급력과 이후의 학문적 논의의 확장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지성인의 명성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의 (무)의식적인 대중적 소비의 현상까지를 본다면 그 학문적, 문화적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사이드의 논의를 비판하고 틈새를 공략해 왔지만 그 누구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폐기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학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그에 관한 글을 쓰는 그야말로 학자이자 글쟁이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그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자신이 사는 현실의 문제와 연관시켜 불합리한 차별과 폭력, 강제적인 권력의 행사와 그것을 통한 지배적 담론체제의 형성을 날카롭게 비판하였고, 그로 인해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던 현실 참여적인 지식인이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힘썼던 한 사람인 사이드에게 최근 일어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위대한 지성이자 행동가였던 사이드의 발자취가 뿌리 깊은 이 역사적 갈등의 골을 메우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남긴 학문의 족적과 정치, 문화적 행보를 남은 후세대들은 어떻게 이어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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