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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쿡🇰🇷/여행

[경주여행] 무열왕릉(주차, 매표, 가격, 입장 시간 등) 경주 구경거리, 경주 볼거리, 경주 가볼만한 곳

by 다비니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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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1일 여행 코스: 석굴암 -> 불국사 -> 무열왕릉 -> 황룡사지 -> 첨성대 -> 월정교 -> 동궁과 월지(안압지)]

[경주·포항 2일 여행 코스: 문무대왕릉 ->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 월곶이 -> 스페이스워크]

[경주 3일 여행 코스: 분황사 -> 포석정]

 

경주 여행 1일차, 석굴암을 시작으로 해서 불국사를 다녀온 후 다음으로 간 곳은 무열왕릉이다. 무열왕릉 근처에는 도봉서당, 서악동 삼층석탑, 헌안왕릉 등이 있어 같이 관람하였다.

 

경주 무열왕릉 매표소 및 입구

무열왕릉 입구에는 넓은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차비는 무료다.

주차장 옆에는 이야기가 있는 경주 여행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에 대한 내용이 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만화로 되어있는 점이 좋다.

만화를 보고 매표소로 향했다.

관람 시간

  • 3월~10월: 9시~18시
  • 11월~2월: 9시~17시

관람요금

  • 어른(19세~64세): 개인 2,000원, 단체 1,600원
  • 군인/청소년(13세~18세): 개인 1,000원, 단체 800원
  • 어린이(7세~12세): 개인 500원, 단체 400원

* 단체는 30인 이상, 카드결제 가능

면제

- 국가유공자 및 그 배우자(단, 유족증은 소지자 본인만)

- 장애인 등록증 소지자(1급~3급 중증)

- 참전용사증, 5.18 민주유공자증 소지자

- 독립유공자, 특수임무 수행자와 그 유가족

- 경주시에 주소를 두고 있는 자

- 65세 이상

- 기초생활수급자, 재외동포로서 경주시에 3개월 이상 계속하여 국내거소 신고를 한 자

* 상기 해당자는 신분증 및 해당증명서 소지자인 경우에 한함

입장 전 경주 무열왕릉에 대한 안내를 읽고 들어갔다.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654~661 재위)의 무덤이다. 이 능은 선도산 동쪽 능선의 끝부분에 자리한 큰 무덤 5기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왕의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손자이다.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진골(眞骨)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치고 내정 개혁을 주도하여 김유신과 함께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으며 왕권을 강화하였다. 660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정벌한 다음 해에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영경사(永敬寺) 북쪽에서 장사를 지냈다. 왕의 시호*는 무열이고 묘호**는 태종이다.

무덤에는 무덤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군데군데 다듬지 않은 돌이 드러나 있다. 능역에 태종무열왕릉비도 있는데, 현재는 받침돌인 돌거북(龜趺)과 머릿돌(螭首)만 남아 있다.

* 시호(諡號):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 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 묘호(廟號): 임금이 서거한 뒤 종묘에 배향할 때 붙이는 임금의 호(號)")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무열왕릉비가 있고, 더 들어가면 무열왕릉이 나온다.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악동 고분군이 나온다. 매표소 맞은 편에는 서악동 귀부, 김인문묘, 김양묘가 있다.

무열왕릉 입구를 배경으로 티켓 인증샷을 남겼다.

 

무열왕릉비

입장하면 왼쪽에는 무열왕릉 영상관이 있는데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현재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일시 폐쇄하였다.

맞은 편에는 무열왕릉비가 있다.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비석이다. 통일신라시대 비석은 당나라의 영향으로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비석의 몸체 위 머릿돌에 용을 새긴 것이 대부분이다. 이 비석은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최초의 것이다.

비석은 몸체가 없어진 채 거북 받침돌 위로 머릿돌만 얹혀 있다. 머릿돌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새겨 놓아 비석의 주인공을 알 수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었고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겼다. 등 중앙에 비석을 세우기 위한 내모난 홈이 있고, 주위를 연꽃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머릿돌은 좌우에 3마리씩 용 6마리가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다.

문무왕 원년(661)에 건립하였으며, 비문은 당시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이 쓴 글씨를 새긴 것이다."

 

무열왕릉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조금 더 들어가면 무열왕릉이 나온다.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 동북쪽에는 경주 태종무열왕릉비(국보)가 있다.

무열왕릉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가치가 있으며 1972∼1973년에 주변을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악동 고분군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경주 서악동 무열왕릉 바로 뒷편의 구릉에 분포하는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이곳의 무덤들은 경주분지의 대형 무덤과 비슷한 형태로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 시설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봉분이 거대한 점, 자연돌을 이용해 둘레돌을 두른 점 및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점으로 보아 안에는 나무로 된 네모난 방을 만들고 그 위와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형식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들 무덤이 분포한 지형은 선도산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상에 있고, 뒷산과 동서의 계곡 건너에 있는 능선 등을 종합해 볼 때, 풍수지리사상의 영향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의 주인에 대해 첫 번째 무덤은 법흥왕릉, 두 번째 무덤은 진흥왕릉, 세 번째 무덤은 진지왕릉, 네 번째 무덤은 문흥대왕릉 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서악지구 및 능역 안내도

걷다보니 옆으로 빠질 수 있는 샛길이 있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주변에는 경주 도봉서당,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경주 헌안왕릉, 경주 문성왕릉, 경주 진지왕릉, 경주 진흥왕릉이 있다.

이름모를 예쁜 꽃들도 있었다.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꽃들 옆에는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이 위치해있다.

경주 서악동 삼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무열왕릉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다. 모전탑은 전탑(전탑: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을 이른다.

기단(基壇)은 주사위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윗면에 1층 몸돌을 받치기 위한 1장의 평평한 돌이 끼워져 있는데, 남산리 석탑에 3단의 층급이 있는 것에 비하면 간략화된 것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큼직한 네모꼴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얇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문의 좌우에는 1구씩의 인왕상(仁王像)이 문을 향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하나의 돌에 밑받침과 윗면의 층급을 표시하였으며, 처마는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 탑은 독특한 기단 형식으로 미루어 보아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보물)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남산리동삼층석탑이 기단 위에 3단의 층급을 둔 것에 비해 여기서는 1장의 돌로 이루어진 생략된 형식을 하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퇴화되는 과정에서 성립된 석탑으로 추측된다. 각 층의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커서 균형이 맞지 않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경주 헌안왕릉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언덕으로 올라가면 왕릉이 나오는데 진흥왕릉까지 보고 싶었지만 혼자 깊이 올라가기는 무서워서 헌안왕릉만 봤다.

헌안왕릉은 "신라 47대 헌안왕(재위 857∼861)의 무덤이다.

헌안왕은 본명이 김의정으로, 45대 신무왕의 이복동생이다. 재위기간 동안 특별한 치적은 없으나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는데 힘썼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61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무덤의 형태는 가장 단순한 형식의 무덤으로 높이 4.3m, 지름 15.3m의 원형 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 있다.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정된다."

 

경주 도봉서당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왕릉을 보고 반대로 내려가는 길에는 도봉서당이 나온다.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 1년)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라는 묘사재실로 건립되었다. 이후 전란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서당은 숭앙문·도봉서당·추보재·연어재·상허당 등 모두 7도이며 일종의 서원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치형식은 재사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예이다. 강당(도봉서당)은 정면 5칸·옆면 1.5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옆·뒷면에 쪽마루를 둘렀다. 사당(상허당)은 정면 4칸·옆면 1.5칸이며, 중당협실로 구성된 바로 볼때 강당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재(연어재)는 남쪽과 동쪽면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여 두 개의 정면을 갖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다 둘러보고 이제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옥 공방카페도 있다.

햇살도 밝고 날이 참 좋아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하루였다.

공방카페 앞에 예쁜 정원도 있는데 우리는 시간이 없어 눈으로 구경만 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음에는 여유롭게 들러봐도 괜찮을 듯 하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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